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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Scuba Story   |   2016-04-30 0 386 목록
<서귀포 문섬에서 거북이를 만나다>
글 강영삼, 사진  |  2015. 7 · 8 호

강영삼의 서귀포 바다이야기

 

문섬에서 거북이를 만나다

 

바다는 약간 어두웠다.
새끼섬에서 뛰어내려 혼자 서쪽으로 이동한다.
왕석들 위로 통통하게 살찐 볼락들과 주걱치, 돌돔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새끼섬 비스듬히 바다 속 언덕을 내려간다.
작은 직벽들 옆으로 노란 맨드라미들 다닥다닥 피어있다.
조류가 느껴져 바닥까지 가라앉아 새삼스레 몸을 가다듬는데 바로 코앞에
바다거북이 앉아 있었다.
그것도 놀랬는지 서로 가만히 쳐다만 보게 되었다.
오, 육십 센티미터나 될까 가까이서 쳐다본 그것은 외국에서 보던 것보다는 약간 작으나
머리부터 시작해 온몸에 따개비가 앉아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상념도 없었다.
가만히 쳐다보자 그것의 눈동자에도 특별히 기쁨이나 두려움 같은 것은 비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것은 드문 일이다, 사진으로 남기자 생각이 들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1. 제주도 역사에서는

 

조선시대 초 세종실록지리지(1453, 단종 2년에 펴낸 지리지)에는 제주도에는 거북이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전복,
오징어, 미역, 옥돔과 더불어 대모(玳瑁, 바다거북, 혹은 그것의 등껍질)가 생산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나라에서
진상받기 위한 항목이었으니 그물도 변변찮던 시절 거북이를 잡으려면 갯가 얕은 곳으로 걸어 나온 것을 잡거나 떠다
니던 사체를 건졌을 것이다. 그보다 200년 후 편찬된 탐라지에는 정의현(남제주 동쪽부분, 현청이 성읍리에 있었다.)
에서만 바다거북 6장을 매년 진상하였다고 적혀있다. (탐라순력도 부분 제주시 소장)
그림은 감귤진상품 확인하는 그림으로 관덕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말이나 전복도 그렇듯이 바다거북껍데기나 해산
물들도 비슷한 절차로 나라에 바쳤다. 대모갑(玳瑁甲)은 당시 중앙에서 의료, 약재를 맡아본 혜민서에 진상했다고 하
였으나 의료용으로 보다는 담뱃갑이나 장식품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진주(전복에서 나왔을)와 앵무조개(우도가 주
생산지)도 생산됐다는 기록도 있었다.

 

 

 

 

 


탐라순력도 부분, 제주시 소장

 

 

 

 

 

 

2.오늘날에는

 

범섬과 법환 사이에서 잠수하다가 봤다 라든지 최근 동방파제에서 보았다 얘기는 이곳 다이버들사이에 흔히 들리는
말이다. 내가 아는 어느 해녀는 물질하다가 만나면 요왕(용왕) 아들이라 생각되어 소라를 까서 주는데 그것이 받아먹
는다고 하였다.
수년전에 필자는 테크니컬다이빙에 심취한 K 박사부부와 표선 금덕이여를 수중분화구라 생각하여 탐사하던 때가 있
었다. 당시 수중세계 박주연기자가 동행하였는데 거북이를 만나 사진도 찍었다. 당초 삼일동안 그곳에 집중적으로 다
이빙하기로 하여 강정에서 보트까지 가져갔는데 바다사정이 좋이 않아서 겨우 한번 하였는데 귀항할 때 박기자가 멀
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 박주연, 수중세계 재인용

 

 

 

 

3. 문섬의 바다거북

 

가만히 앉아 쉬고 있는 그것에 결국 내가 방해한 셈이다.
게다가 나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이 대었다.
젓는 노 역할의 앞발에 유난히 따개비가 많이 붙어있었다.

 

 

 

 

 

 

 

 

 

사진 찍으니 역시 스트로브 불빛에 짜증났을 것이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뒷모습을 보다가 조금 있으면 따라 들어올 K씨 일행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부랴부랴 핀킥하여 그것을 가로막아 방향을 바꾸게 하였다.
그것도 쫓기는 게 불편한지 바닥에 앉지는 않고 우리들은 제자리 맴을 돌았다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가만히 두자.
그것의 행동을 강제할 권리가 나에게 없는 것이다. 

 

 

 

 


그것도 서두르지 않았다. 유유히 멀어져갔고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4. 제주도에는

 

거북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지귀도에 다이빙을 하면 당연히 관찰하고 하였다.
과거 중문해수욕장에 알을 낳으러 올라온다하여 어떤 단체에서 몇 년간 모니터링 했는데 허사였다.
그것들은 머물러 살기도 하고 이동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도에서 산란을 하는 게 아니라면 장어처럼 산란하러갔다가 다시 고향을 찾아오는 식일까?
아니, 이곳을 고향이라 할 수 있을까?
설령 제주도에서 산란하고 싶어도 그럴 환경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괌의 건비치에서 다이빙할 때 가이드의 말, 거북이가 종종 왔었는데 개발이 진전되어
이젠 오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를테면 바다에 페트병을 버리면 해파린 줄 알고 먹은 거북이는 빨리 죽게 마련이다.
지역을 나누어서라도 보존을 하고 거북이가 산란하러 제주섬 해변에 올라오고 하는 것은 꿈일까?
필자는 삼 년 전에 일본 나고야지역 여행을 하였는데 그곳 우두갑(羽豆岬) 작은 박물관에서
바다거북 알을 낳는 모습의 박제와 실제 장면 사진을 보았다.
위 산란사진은 그 사진을 재촬영한 것이다.
필자도 큰 거북박제를 소장하고 있는데 사십 년 전에 제작된 것이다.
그때쯤에 쓰던 J밸브 공기통과 비교 해봐도 엄청난 크기이다.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잡히던 (아니 수천, 수 만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던) 대모의 후손일 것이다

 

 

 

 

 

 

 

 

 

 

 

 

 

 

 

 

 

 

 

 

 

 

 

 

서귀포 솔동산 사거리마다 토산품점이 있고 가게마다 거북박제나 보물고동을 팔던 때
흑산호 파이프를 중대장 선물로 사가던, 어린꼬마 나에게 언제나 씨익- 웃던
S형은 월남에 간다더니 우리 반 여학생 위문편지 답장을 써놓고
편지보다 빨리 관속에 누워 돌아왔다. 만국기 휘날리는 서귀포부두에는 살아 온 자
가족들 기뻐하는 속에서 박제처럼 말이 없었다. 그렇게 그때는 나라생각 있었다.
부두도 작았고 해경의 큰 배도 없었고 해녀들 잠수복도 없었다.
우리 마을, 너 네 바다 없었지만 더불어 사니 분쟁도 없었다.
대신 배고픔 면해 보자는 꿈도 있고 가난 속에서도 사랑이 있었다.
눈에 유리구슬 박혀 볼 수 없도다. 가슴속에 쌀겨로 채워져
언제가 더 나은 세상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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