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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Scuba Story   |   2016-05-30 0 353 목록
<다이빙 여행지旅行地에서 만난 건축 - 제주도>
글 · 사진 조한무  |  2015. 11 · 12 호

 

 

...사람은 건축을 통해 

인간 공동의 것을 바라고

기뻐하며

함께 사는 희망을 이렇듯 건물 속에 담습니다

이렇게 보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바

곧 공동선(公同善)’을 이루는 또 다른 아주 평범한 방식입니다... 

김광현 교수(1953~)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 하우스

 

 

 

 

 

 

 

 

 

 

 

 

▲글라스 하우스의 내부 전경

 

 

 

 

 

 

 

 

 

▲글라스 하우스 내 전시장

 

 

 

 

 

 

 

 

 

 

▲글라스 하우스 내 전시장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 하우스 진입부

 

 

 

 

 

 

 

 

 

 

 

▲물박물관_가을

 

 

 

 

 

 

 

 

 

▲물박물관_겨울

 

 

 

 

 

 

 

 

 

 

▲돌박물관_봄

 

 

 

 

 

 

 

 

 

 

▲돌박물관_여름

 

 

 

 

 

 

 

 

 

 

 

▲돌박물관_가을

 

 

 

 

 

 

 

 

 

 

 

▲돌박물관_겨울

 

 

 

 

 

 

 

 

제주더 Jejuder

 

[New Yorker (뉴요커): 뉴욕에 사는 사람, 1925년 창간된 뉴욕의 문화를 다루는 잡지.]

[Jejuder (제주더): 제주에 사는 사람, 제주를 그리어하는 사람]

 

 

뉴요커, 뉴욕에 사는 사람을 뉴요커라고 부르지만 그 호칭 속에는 뉴욕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이 들어있다. 지역의 이름에 “-er”이란 접미사를 붙여 “-에 사는 사람이란 단어를 만든 것인데, 이를 보고 나는 제주더(Jejuder)라는 말을 만들어 보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제주더라 불렀다.

나는 제주의 분위기가 좋았고, 낮은 구릉을 따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길을 좋아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숨겨진 비경들이 있었다. 그 길들은 지금 올레길로 개발되어 너무 유명해진 길이 되어 버렸다.

올레길을 볼 때마다 나만의 제주가 그 치마 속을 들치어 숨겨졌던 비밀스런 것들을 세상에 다 보인 기분이 들어 못내 아쉽다....라고 한다면 이기적이라 할까.

동네 안에서 내심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짝사랑하던 어느 여학생이 아주 유명한 연예인이 되려 TV를 틀 때마다 나오고 수많은 팬들이 생겨버린 기분이다. 제주를 많은 사람들에게 뺏긴 기분이었다.

보통 일년에 열두번 정도 제주에 갔었는데, 그 방문은 매번 스쿠버다이빙이 목적이다 보니 일정이 끝나면 회집이나 돼지갈비, 고기국수 집을 찾아가는 오래된 습관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이빙을 일찍 끝내고 주변의 좋은 건축물을 회원들과 방문하였었다.

 

 

 

 

 

 

 

 

▲바람박물관_봄

 

 

 

 

 

 

 

 

 

 

▲바람박물관_여름

 

 

 

 

 

 

 

 

 

 

 

▲바람박물관_가을

 

 

 

 

 

 

 

 

 

 

 

 

▲바람박물관_겨울

 

 

 

 

 

 

 

 

 

 

 

 

 

▲바람 틈새로 들어온 빛

 

 

 

 

 

 

 

 

 

 

 

▲바람 틈새로 눈이 들어왔다.

 

 

 

 

 

 

 

 

 

 

 

▲빛과 바람이 돌을 덮어 사색을 불러 일으킨다

 

 

 

 

 

 

 

바람

바람박물관(이타미준(1937-2011)설계). 지금 이곳을 방문하기는 좀 까다로워졌다.

 나는 이곳에 서서 나무널 사이로 레이저빔마냥 들어오는 햇살과 증폭된 바람소리를 듣기를 좋아했다

바람부는 소리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흔한 경험이다. 더군다나 바람 박물관에 서 있다고 해서 매번 바람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바람>을 전시한다는 박물관에 전시품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셈이다.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헛간 같이 생긴 이 건물은 입면이 살짝 굴곡지면서 바람을 모으고 

나무널의 틈새로 그 소리를 증폭시키고 있다.

처음 이 안을 장식하고 있던 작은 조형물들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졌다

없어졌는지 관리자가 치웠는지 모르겠지만, 세게 불던 바람소리가 결국은 잦아들 듯 건축물의 빛은 바래갔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퇴색한 빛의 건축물은 주변 갈대와 잘 어울렸다. 바람은 그 곳에 나타났다가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사라지기도 하였고, 기다리다 지쳐 떠나는 이를 약 올리듯 다시 윙윙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바람소리는 따뜻한 평안을 느끼게도 하고, 공허함을 안겨 주기도 하며, 막막한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낮은 소음으로 부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속의 잡음이 씻기는 듯 했다. 마음속의 소음을 바람소리가 잠재우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곳의 경험이 좋았지만, 모두가 그 경험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같이 온 이들 중 어떤 이는 미소를 띠우며 공간을 둘러보았지만, 어떤 이는 이내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감상은 자유니까. 이 비싼 건축물-헛간처럼 보이는-을 만든 수고가 모두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수는 없겠지만, 사색할 수 있는 짧은 쉼표를 한번 찍어보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타미 준의 방주교회 전면

 

 

 

 

 

 

 

 

 

 

▲방주교회 옆의 주거동이 보기 좋았다.

 

 

 

 

 

 

 

 

 

 

▲이타미 준의 방주교회는 독특하면서 편안한 그의 조형감각을 보여준다.

 

 

 

 

 

 

 

 

- 사진

돌을 씹는 것 같은 병의 고통 속에서 사진작가 김영갑은 제주의 풍경을 담았다. 약간 낯설고 제주스럽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그의 사진은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가장 제주스러운 풍경을 담은 작가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세상을 떠난 이에게 우리는 관대해지는 걸까. 세상이 그를 향해 꼭꼭 닫아둔 마음의 문은 그가 떠나면서 조금씩 열렸다.

그는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자신의 갤러리를 만들었다. 그의 외로운 사진 앞에는 돌들이 길게 쌓여있다.

해가 지는 저녁, 하루를 돌아보는 그를 맞이하는 것은 바람, 바람, 바람이었을 게다. 하늘을 부유하던 그의 시선이 한동안 멈춰 있으면 가슴 앞 차가운 카메라는 그의 옅은 체온을 나누어 받고 있었다. 불친절한 세상을 뒤로 그는 제주를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따뜻하지만 공허하기도 해서 보는 이의 마음이 아리다. 한라산 관광으로 온 여행객들이 제주흑돼지와 소주를 마시는 동안 시끄러워진 일탈과는 다른 제주도가 그의 사진 속에는 있다.

차갑고 하얀 콘크리트 벽에 걸린 기다란 사진들은 발아래 돌들과 잘 어울려서 나는 이곳을 몇 번이나 갔었다.

어느새 유명해진 갤러리가 되어 표를 받는 직원들은 방문객에게 불친절해졌지만

교정 길목 길목마다 놓여있는 돌들은 그의 애정을 기억하고 있는 듯싶다.

제주도를 사랑한 그는 제주도에 눌러 앉았고 배고픔 속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제주를 사랑하는 수많은 제주더(Jejuder)들을 대신하여 그곳에 뼈를 묻었다. 그에 비해 서울에 사는 나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속물이다. 비록 그와 일면식조차 없었지만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좋다. 자칭 제주더(Jejuder)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서울에 묶여 있는 이중적인 나는 그를 떠올릴 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사진이 좋다

 

 

 

 

 

 

 

 

 

 

▲김영갑 갤러리 내부

 

 

 

 

 

 

 

 

 

 

▲김영갑 갤러리 - 한켠의 벤치

 

 

 

 

 

 

 

 

 

 

 

▲갤러리 주변의 어느 멋진 창고문

 

 

 

 

 

 

 

 

 

 

 

▲비오토피아 두손 미술관의 계단

 

 

 

 

 

 

 

 

 

 

 

 

▲비오토피아 내부 정원의 풍경은 모네의 수련이 떠오른다

 

 

 

 

 

 

 

 

 

 

▲포도호텔의 복도는 이타미 준의 감성이 베어있다.

 

 

 

  

 

 

 

작은 집

마음이 가난해진 나에게 친구가 허락해준 빈 집에서 얼마간을 지낸 적이 있다. 집안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네 칸의 아주 작은 방이 붙어 있는 단출한 제주 토속 집이었다. 미니멀리즘 디자인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구좌에 있던 그 집은 성산과도 멀지 않아서 다이빙을 하며 저녁에는 근처 마트에서 삼겹살을 사다가 혼자 구워 먹고 작은 방에 누워 자는 여유를 부렸다. 마음의 행복. 넉넉함은 집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마음의 넉넉함에서 나오는 것이란 진리를 한 번 더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 ...사람은 건축을 통해 인간 공동의 것을 바라고, 기뻐하며, 함께 사는 희망을 이렇듯 건물 속에 담습니다. 이렇게 보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바, 공동선(公同善)’을 이루는 또 다른 아주 평범한 방식입니다. (김광현저.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 2014, 공간서가)”라고 언급한 김광현 교수님의 말처럼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선하고 선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주 작은 집 앞에는 거친 마당이 있었고, 주변으로는 길을 따라 집들이 듬성듬성 있었는데, 빈 집이 점점 많아졌다. 그 곳을 살던 노부(老婦)가 세상을 떠나면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 그렇게 비어가는 동네의 길을 가다 보면 숨죽이고 움츠린 집에서 누군가의 기침소리가 났다. 그렇게 집에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있다가도 사는 사람이 떠나면 집도 온기를 잃었다.

그러다가 TV프로에 이 동네가 소개되면서 갑자기 활기를 띄게 되었고, 이곳은 카페가 많이 생겼다. 민박집도 많이 생겨서 집값도 많이 올랐고, 그 작은 집을 벌써 팔아버린 친구는 평생 그 집을 다시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많이 오길 바라며 카페를 만들고 민박집을 만든 이들은 페이스북에, 블로그에 이곳의 풍경을 열심히 실어 나른다.

어쩌면 집들 사이로 거닐며 풍경을 보는 것도, 다이빙을 하며 물속에서 숨은 여 사이로 거니는 것도 결국 우리 모두가 이루기 바라는 선하고 선한, 지극히 평범한 것이 아닐까.

 

 

 

 

 

 

 

 

▲제주 현무암으로 만든 거친 담은 아름답다

 

 

 

 

 

 

 

 

 

▲구좌의 단촐한 집

 

 

 

 

 

 

 

 

 

 

▲구좌의 골목길

 

 

 

 

 

 

 

 

 

 

▲구좌의 비어있는 밤골목

 

 

 

 

 

 

 

 

 

 

▲비어있는 운동장

 

 

 

 

 

 

 

 

 

 


태풍 앞에서 

 

스쿠버 다이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조한무 글/사진

건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

디어 건축사사무소 대표 (www.deararch.com)

TDI/SDI Instructor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스쿠버동아리 아스트 책임강사

hanmoo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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